Below

Random Access Memories에 관한 단편적인 이야기 몇 가지

Random Access Memories에 관한 단편적인 이야기 몇 가지

묘하게도, 이미 몇 달째 세계 음악팬들의 가장 큰 화제가 되고 있는 ‘살아있는 전설’ Daft Punk의 신보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게 너무 늦은 감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언제 이야기를 꺼내든 시의성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거두절미 하고, 광기에 가까운 전세계 음악 팬들의 관심과 열광 속에 <Random Access Memories>가 정식으로 모습을 드러낸 후로 앨범을 감상하며 느낀 간단하고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두서 없이 나누고자 한다.

84fb6a71900bd8fe18c9da3f36b23156

 

로봇의 음악을 하는 인간들, 인간의 음악을 하는 로봇들

<Random Access Memories>를 감상함에 있어 기본적으로 수반되는 전제는 ‘로봇’을 자처하는 이들의 음악적 콘셉트다. 발매를 앞두고 Daft Punk는 “사람의 목소리를 각종 효과를 거쳐 기계음처럼 바꾸는 것이 요즘의 추세지만 우리는 로봇의 목소리를 최대한 사람의 목소리처럼 만들어보려는 시도를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발언은 그들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특유의 보코더 보컬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듯 하다. 두 로봇이 당대 최고의 연주가들과 가수들과 함께 인간들의 악기를 직접 손으로 연주하고 노래를 부름으로써 실현하고자 했던 목표는 ‘인간의 손에 의해 역으로 완벽에 가까운 기계적 정밀함을 지닌 사운드’로 보인다 – “과거 Quincy Jones가 프로듀싱한 앨범들은 특유의 ‘정밀한’ 사운드로 우리에게 언제나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그 어떤 테크놀로지의 힘도 빌리지 않고 만들어낸 소리였다”고 말한 대목을 주목하자.

어쩌면 오직 Daft Punk였기에 가능했던 것

<Random Access Memories>를 처음 감상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뚜렷하게 느낄 수 있던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음악에서 쉴새 없이 묻어나는 자유로움과 여유였다. 그들은 통상 현재 세계 EDM 씬의 ‘거물급’ 아티스트들의 활동 패턴이라고 할 수 있는 클럽들을 무대로 투어를 돌고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 자리를 꿰차는 정도가 아닌 완전히 다른 영역에서 자신들의 음악을 하고 있다. 혹자는 이러한 그들의 독보적인 지위를 두고 ‘이미 EDM의 범주를 벗어나 하나의 신적인 레벨로 넘어간 것’이라며 수직적인 지위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과거의 작업들을 통해 EDM 씬이 지금의 규모와 인기를 갖추는 초석을 다졌다고도 볼 수 있는 그들이 이제는 그들만의 독립적인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이것은 마치 과거 Michael Jackson이 이룩했던 위업과도 같다.

51fc5ee33e85a8908ba295ba537a94d9

축복과도 같은 이러한 환경은 그들에게 무한한 자유도를 보장해줬고 그 이점은 앨범 전반에 걸쳐 여과 없이 드러난다. 아무런 제약도 없고,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는 그들은 모든 트랙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음악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실험한다. “음악을 되살려내자”며 자신 있게 포문을 열고, 선구자의 회고 녹취록을 기반으로 음악의 역사를 소리로 표현하는 동시에 그의 말을 빌려 바로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음악적 자유’를 마음껏 뽐낸다. 인간의 감정을 닮고자 하는 로봇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그리기 위해 뮤지컬을 비롯한 여러 장르를 하나의 트랙 안에 마음 가는 대로 녹여냈다. 오래 동경해온 70년대에 대한 헌정곡을 평소 눈 여겨 봐둔 뮤지션들과 함께 협연한다.
이렇듯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쉴새 없이 ‘가지고 놀다가’ 마지막 트랙에 이르러서는 우리를 말 그대로 우주로 날려보내고는 앨범을 마무리 지어버린다. “Contact”마저 재생이 끝난 후에는 진한 여운과 함께 ‘전자음악의 신기원을 열었던 그들이 이렇게 미련 없이 일을 저질러놓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디지털 디톡스

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7대 블루슈머’ 중 하나는 디지털 디톡스(detox: 해독)였다. 스마트폰 사용자 3천만 시대를 사는 우리는 디지털 문명이 제공하는 혜택만큼이나 그 독성에 중독돼 있으며 가끔씩은 디톡스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전자음이라는 것은 EDM이라는 장르의 태생적 본질이기는 하나 그 사이에서 <Random Access Memories>가 갖는 시사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이 비유가 유효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 전통적인 작업 방식을 되짚어 탄생한 댄스 뮤직으로서 고유의 흥겨움을 간직하면서도 귀가 휴식할 수 있는 음반이다. 과거 시대의 무언가를 현대로 가져다 놓음으로써 역설적으로 새로운 대안으로 작용한다.

‘EDM’이 아니잖아?

<Discovery>의 연장선상에 위치한 괴물 같은 앨범으로 돌아와 타성에 젖어가는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씬을 평정하고 모두가 함께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을 열어주는 구원자 Daft Punk. 특히 수많은 팬들이 기대했던 건 어쩌면 “<Discovery>의 연장선상에 위치한 괴물 같은 앨범”이었을 것이다. Daft Punk 본인들의 입장과는 무관하게 전세계 대다수의 EDM 팬들과 관련 매체들은 연일 그들에 대한 기대감을 불려 가며 하늘로 날려 보냈고, 기어이 앨범의 정식 공개 (정확히는 발매전 유출)과 함께 이러한 자기 최면은 산산조각난 채로 곤두박질 쳤다. 하지만 그 흔한 화이트 노이즈의 스윕 사운드, 빌드업과 브레이크다운 등으로 대변되는 현재 EDM의 전형적인 방법론을 보란듯이 외면하고도 라이브 연주와 절제된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만으로 이토록 풍부한 댄스 뮤직을 창조해낸 이 앨범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음악은 이래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순간 비로소 당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된다”고 되뇌는 Giorgio Moroder의 값진 조언은 이 측면에서 가장 큰 울림을 갖는다.

93791a57d82128ab2e6a13985b78adbd

[Random Access Memories]의 테마

EDM 씬에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음악들 중 ‘공연만을 위해 제조된’, ‘장르 자체를 위한 장르 답습’이 얼마나 많은 지 되돌아 본 적 있는가. 소위 ‘페스티벌 앤썸’이 되기 위해 빅룸 사운드를 고집하고, 아티스트 본인들마저 어떤 노래에 대해 이야기할 때 “공연에서 틀 때 반응이 좋은지” 여부로 평가를 내리는 일이 허다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떤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혹은 어떤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일렉트로닉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작업은 씬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Random Access Memories> 앨범은 ‘단편적이고 무작위적인 다양한 기억에 대한 접속의 연속’이다. Rolling Stone과의 인터뷰에서 Thomas는 앨범 타이틀이 “인간의 뇌와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에 기억이 저장되는 방식에 있어서 존재하는 ‘무작위성’이라는 공통적 특성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나아가 Guy-Manuel은 앨범을 통해 “미래적인 사운드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지만 우린 그저 과거와 소통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96f5ab09a6d4379930059bc7ba3d1f26

이 앨범은 전반에 걸쳐 기본적으로 Daft Punk 본인들의 “70년대와 80년대에 대한 동경”을 표현하는 것과 동시에, 디스코 음악의 시대를 주도한 전설 Giorgio Moroder 자신의 삶에 대한 기억 (“Giorgio By Moroder”),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회상 (“Instant Crush”), 인간이 될 뻔했던 로봇의 이야기 (“Touch”)가 진행된다. “Get Lucky”조차도 Pharrell Williams에 의하면 Daft Punk, Nile Rodgers와 함께 처음 만나 단번에 ‘환상의 조합’를 이루어 곡 작업을 하며 밤을 지새우던 날들에 대한 기억을 가사로 풀어낸 것이다. 이렇듯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지나간 단편적인 기억들을 무작위적인 패턴으로 더듬는다.

<Random Access Memories>의 수록곡들의 가사에 대한 이야기는 별도의 기사에서 다룰 예정이다.

시대역행의 역설 – 시대를 아우르는 통시적 대작

알다시피 <Random Access Memories>는 현재 EDM으로 대변되는 메인스트림 일렉트로닉 음악의 흐름과 완전히 동떨어진 앨범이라는 명백한 사실이 세계 EDM 시장에서 야기하는 어쩔 수 없는 어색함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문제에 대해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 호주의 EDM 매체 inthemix에 게재된 Jim Poe의 글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675440b7582f5c29b2ec6be5f78df116

(중략) Giorgio Moroder, Nile Rodgers, Pharrell Williams. 지난 40년간 가장 큰 족적을 남긴 댄스-팝 프로듀서들이 Daft Punk를 도와 커리어 정점을 찍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위대한 예술 작품을 실체화 시켰다. “Giorgio By Moroder”는 <Random Access Memories>를 음악의 지난 반세기의 역사에 완벽히 융화시킨다. (중략) 마치 음악의 ‘로제타 스톤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법을 발견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유물)’처럼, 이 앨범을 우주에 쏘아 올리면 외계인들은 이 앨범을 해독해 이 시대의 댄스 뮤직이 어땠는지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댄스, 재즈, 록, 그리고 팝을 한 데 아우르면서 Daft Punk는 이 앨범을 통해 댄스 뮤직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중략) Daft Punk는 자신들의 여유를 활용해 팝과 록과 펑크와 디스코, 심지어는 컨트리가 하나로 화합되어 있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모든 것이 폭발적으로 성장해 음악 팬들이 수백 개의 장르와 스타일의 추종자로 흩어져 서로를 멸시하기 시작하기 이전의 시대로 말이다. 마치 그들은 이런 분열의 시국을 포용적인 하우스라는 기치 아래 통일하는 것을 목표로 세운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믿기지 않게도 너무나 완벽하다. (중략) Daft Punk는 자신들의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와 로봇 코스튬을 챙겨서는, 소름끼칠 정도로 비인간적으로 변질되어간 대중 문화의 한복판에 가장 인간 냄새 나는 음악을 가지고 마치 포스트 모던 트로이 목마처럼 침투해 들어왔다. 만약 차트 정상의 자리를 누구에게 줄 것인가를 두고 <Random Access Memories>와 다른 무언가 (이를 테면 생각 없는 EDM 또는 <The Voice> 우승자) 사이에서 고민해야 한다면 우린 매번 전자를 택해야 할 것이다.

 

 

관련 게시물

Facebook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