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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ING DEEP] 나는 왜 명월관 운영을 포기하지 않는가, 김은희 대표 인터뷰

명월관 로고

글 | 대중음악평론가 이대화

지난 10월 4일 홍대 클럽 타가 문을 닫았다. 2006년에 오픈했으니 10년을 버텼다. 십센치가 배출된 손꼽히는 라이브 클럽이 문을 닫았을 정도면 10년 가는 언더그라운드 문화공간이 얼마나 나오기 힘든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명월관은 곧 20주년 파티를 연다. 록이나 포크보다 마니아 층이 얇은 댄스 음악으로 그 오랜 시간을 버텼다. 이것은 씬의 자랑이자 역사적인 업적이다. 한국 클럽 마니아들에게 크나큰 자부심을 선사한 김은희 대표를 만나 명월관의 지난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녀가 왜 명월관 운영을 포기하지 않는지도 물었다.

명월관이 정확히 언제 오픈했나?
정확히는 1994년이다. 알콜성 치매로 (웃음) 1996년에 오픈했다고 생각해버렸다. 정확히는 22년 됐다. 2000년대 중반 무렵 내부 공사와 운영 체계의 이유로 1년 넘게 문을 닫은 적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당시엔 홍대 씬을 떠나 신촌에 몽환이라는 복합문화공간을 운영하고 있던 때라 정확한 기억이 아닐 수도 있다.) 이래저래 20주년이 맞는 것 같다.

명월관이란 이름은 무슨 뜻인가?
청평명월에서 따온 이름으로 일제시대 종로에 있던 요릿집에서 출발한 장안의 명사들이 모여들던 일류 사교장이었다. 춤, 노래, 성품, 재주가 뛰어난 기생들이 있던 집이었다. 클럽 명월관의 예전 이름은 황금투구였는데, 예전 클럽 카고와 마트마타 자리에 있다가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명월관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첫 번째 운영자가 아니라 인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운영을 맡게 되었나?
2010년부터 운영했다. 인수할 때는 주말에 2명 춤을 출 정도로 예전과 달라진 상태였다. 2000년대 초반에 클럽데이가 생기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고 예전의 색깔을 많이 잃었다. 운영 체계에도 문제가 좀 있었던 것 같고. 모든 젊음을 불살라 놀았던 공간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던 공간인데 아쉬웠다. 속상하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1세대 사장님이 오셔서 ‘네가 해야 될 것 같다’고 권유를 하셨다. 숙명으로 (웃음) 받아들이고 시작했다.

그때 홍대 클럽의 분위기가 어땠나?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태동, 전성기였다. 거의 르네상스 시대라 본다. 거리엔 온갖 예술적인 풍경들과 문화적인 생동감이 넘쳐 흘렀고, 수많은 아티스트들과 문화계 인사들이 집결해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약간의 생경함과 위화감을 느낄 정도였다. 클럽 엔비(원래 뜻은 쁘일이라는 발음의 러시아 언어였고 먼지라는 뜻이다)도 그 당시 1세대 명월관 사장님과 동업자들 그리고 매니저였던 나를 포함해서 여러 명이 한국 최초의 대형 일렉 뮤직 클럽으로 만든 공간이다. 1997년이었으니 일렉 뮤직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열악했고 지금난에 봉착해 양현석 씨가 투입됐다. 그리고 홍대가 조금씩 자본집약적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대표님이 명월관에 끌리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 왔을 때 너무 충격을 받았다. 그때는 (춤 추러 간다고 하면) 락카페 정도나 생각했지 클럽의 개념도 잘 몰랐다. 우선 사람들이 뭔가에 홀린 듯 자유롭게 놀고 있는 분위기에 굉장히 놀랐다. 사람들이 다들 너무 멋있었다. 진짜 자유로워보였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거다 싶어서 매일 오다시피 했다.

명월관 역사에서 아직도 잊히지 않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정말 많겠지만 두 개만 꼽는다면?
명월관 하면 중요한 인물이 둘 있다. 비눌과 화화다. 둘은 일상생활이 그냥 예술인 사람들이다. 엄청나게 신비감을 주는 사람들이다. 하루는 명월관에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더운 여름 토요일이었고 디제이는 반디였던 것 같다. 비눌이 머리에 재떨이를 쓰고 마임 같은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화화는 스피커를 타고 있었다.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섬이나 행성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많아서 너무너무 더웠는데, 비눌이 화장실로 천천히 가더니 청소하는 호스를 가져와 사람들에게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아 왜 저래’ 하지 않고 마치 그 물이 성수라도 되는 것처럼 서로 맞고자 했다. 지금은 약간 남의 이목을 신경 쓰면서 노는데 그때는 난리도 아니었다. 휴지로 살풀이했던 사람도 있고. 엄청 자유롭게 놀았다.
또 하나는 올해 했던 기부 파티다. 내 힘으론 어떻게 해결이 안 됐는데 다들 온정으로 힘을 합쳐서 난관을 극복하게 도와줬다. 그 감동은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명월관이 어느 한 개인의 것이 아니고 모두가 수호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명월관 최고의 해는 언제였나?
1990년대다. 1999년 즈음까지.

그때는 왜 그렇게 잘 됐을까?
그때는 지금처럼 클럽이 많지 않았다. 음악도 전부 일렉트로닉 음악도 아니었고. 다양했다. 이 공간이 주는 희소성과 특별함? 그런 게 있던 시기다. 그리고 굵직한 연극, 영화, 뮤지션들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많은 유명인사들이 명월관을 거쳐 갔다. 멋쟁이들의 집합소였다고 보면 된다.

그럼 명월관이 가장 어려웠을 때는 언제인가?
지금 힘들다. (웃음) 인수할 때 힘들었고, 사람들이 다시 오게 만들기까지도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다. (웃음)

한 베뉴가 20년을 가기가 정말 어렵다. 명월관이 20년을 버틸 수 있던 비결이 뭘까?
관객의 힘이다. 그리고 디제이들이 만들어놓은 역사다. 운영자들은 부수적인 역할이었다. 물론 운영했던 선배들의 공헌도 있다. 그분들이 고집스럽게 언더그라운드를 지켜내셨기 때문에 나도 여기까지 오게 됐다.

이제 홍대에 EDM 아닌 클럽 음악 들으러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혹시 이태원 등으로 옮길 생각은 안 해봤나?
사람인지라 한두 번 정도는 흔들렸던 적도 있다. 하지만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다. 명월관은 이 자리에 있어야 명월관이다.

출퇴근 하면서 홍대 포차 거리를 늘 볼 것 같은데. 정말 많이 변했다.
그러다 보면 자기네들도 지치겠지. (웃음). 모든 것은 돌고 돌아 어떤 균형의 형태로 회귀한다 생각한다. 이런 문화 자체에 대한 정보가 없을 수도 있다. 미디어의 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언더그라운드 클럽은 상대적으로 매출이 적은 걸로 알고 있다. 테이블 매출도 적고. 명월관은 주로 어디서 매출이 발생하나?
안 나온다. 수익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웃음) 파티 크루들과 디제이들 차비 정도만 겨우 챙겨줄 수 있는 수준이다. 외부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힘겹게 운영 중이다. 미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 그걸 고집하느냐고. 근데 해야 된다. 이건 사적으로는 내 자존심도 걸려 있지만, 명월관이 갖고 있는 상징성은 이미 내 개인의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끝까지 사명감을 가지고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 명월관은 숭고함의 가치다. 우리나라에도 문화가 자생할 수 있다는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그런 힘을 보여줘야 한다. 그게 명월관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30년이 될지 40년이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지킬 수 있을 때까지 지킬 거다.

요즘 홍대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난리인데, 명월관은 임대료에 대한 압박을 안 받나?
안 받는다. 정말 다행인 게 건물주가 정말 괜찮은 분이다. 사정 어려운 거 다 알고 임대료 상승을 안 하겠다고 약속해주셨다.

언더그라운드 클럽이 자생력을 갖추려면 어떤 문화가 선행되어야 할까?
이미 언더그라운드 클럽의 운영자, 디제이, 관객들은 다 잘하고 있다. 할만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좀 더 큰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국가나 사회의 정책이 필요하다. 이미 구성원들은 준비가 되어 있다. 같이 고민도 해보고 연대도 해보고 별의별 걸 다 해봤다. 안 해본 게 뭐가 있겠나. 이건 정책이 필요하지 우리가 자구책으로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치가 중요한 거고.

혹시 미디어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없나? 댄스 씬을 조명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만약에 대화 씨가 피디라면 본인은 할 건가? (웃음) 그분들도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잖나. 당장 앞에 떨어진 과제들이 급해서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먼저 하는 것 아닌가. 이게 총체적인 난국이다. (웃음)

곧 20주년 파티가 열린다. 이번 파티의 캐치 프레이즈가 있다면?
사실, 캐치 프레이즈 같은 것보다는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20주년 파티뿐만 아니라 타 클럽이나 공연장도 비슷한 입장이라고 보는데, 음악을 느끼고 사람들과 따뜻하게 교류하기 위한 목적 외에 방문하는 이들, 입장료 내기를 꺼려하는 이들은 오지 않았으면 한다. (웃음) 입장료라는 것은 그 공간과 디제이에 대한 리스펙이며, 밤새 고민해서 셋을 만들고 비용을 들여 음원을 구입하는 공연자, 즉 디제이들의 당연한 몫이라 생각한다. 단순한 플레잉이 아닌 공연이기 때문이다. 공연 문화계의 질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흔쾌히 입장료를 지불하는 건강한 풍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20주년을 맞은 소감은?
시간이 화살촉과 같다. 실감도 나지 않는다. 나이나 현실에 국한되지 않고 모두 전적으로 삶을 즐겼으면 한다. 거기엔 음악이라는 큰 축복이 있지 않느냐. 관객과 뮤지션과 명월관이 함께 나이 들어 갈 수 있으면 한다. 힘 닿을 때까지 명월관을 계속 지켜나갈 참이다. 여러분들께 너무 너무 감사드린다.

20주년 파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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