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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ING DEEP] 이태원 트랜스젠더 골목에 클럽이 많아지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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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대중음악평론가 이대화

 

지난 8월 12일, 이태원 보광로에 (소방서 뒤편) 복합문화공간 겸 클럽 베톤 부르가 오픈했다. 이것으로 벌써 네 개째다. 작년부터 시작해 파우스트, 래빗홀, 플래툰 소넨덱, 베톤 부르에 이르기까지 1년 사이에 네 개의 댄스 클럽이 한 골목에 오픈했다. 아직 ‘씬’이라 부를 수준은 아니지만 이태원 클럽의 새로운 구심점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 클럽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표방한다는 것이다. 베톤 부르는 하우스/테크노 위주의 메종 루즈와 90년대 힙합과 알앤비, 펑크, 디스코의 메종 느와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파우스트는 국내의 손꼽히는 테크노 명소로 이미 명성이 자자하다. 래빗홀은 테크노를 공유하되 베이스 뮤직까지 아우른다. 래빗홀과 같은 건물 옥상에 위치한 플래툰 소넨덱에도 하우스/테크노 기반의 다양한 음악이 흐른다. EDM을 주력으로 내건 클럽은 하나도 없다.

이런 언더그라운드 분위기가 동네 분위기와 어울리는 것도 흥미롭다. 해밀턴 호텔 뒤편 이태원로가 레스토랑과 럭셔리 라운지로 유명하다면, 보광로와 우사단로는 트랜스젠더 바와 치킨/삽겹살이 즐비하다. 이태원에도 주류와 언더그라운드가 있다면 해밀턴 뒤편이 주류고 보광-우사단로는 언더그라운드에 가깝다. 파우스트의 위치는 특히 그렇다. ‘후커 힐’이라고 불리는 어둡고 좁은 골목을 올라가야 클럽에 도착할 수 있다. 클럽 아래층엔 트랜스젠더 바가 있다.

이 거리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태원하면 ‘이국적’ 분위기를 꼽지만, 그것의 풀 메이크업 버전이 아닌 화장기 없는 맨얼굴 버전이다. 이태원 거주 외국인들의 일상이 현란한 포장 없이 그대로 노출된 곳이자 트랜스젠더들의 생업 전선이다. 평소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게이들의 집합소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클럽 스커트에서는 페이크 버진 주최의 보깅 댄스 파티가 정기적으로 열린다. LGBT의 스트리트 문화를 접목시키기에 이태원 ‘호모 힐’만큼 최적의 장소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에 왜 이렇게 클럽이 많이 생기는 걸까. 언뜻 생각하면 임대료가 1순위 이유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베톤 부르의 대표인 디제이 큐엔에이에 의하면 그런 면이 없는 건 아니라고 한다. “해밀턴 뒷편으로 세련되고 깔끔한 가게들이 많이 들어서면서 일반인들과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 자연스럽게 임대료 또한 굉장히 많이 올랐다. 반면 우사단로 쪽은 건물들이 많이 낡은 편이라 상대적으로 아직 임대료가 저렴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임대료가 가장 큰 이유는 아니었다고 한다. “우사단로의 낡은 건물을 임대한 이유는 임대료 부분도 크게 작용했지만 그보다 허름하고 낡은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재창조하고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너무나도 하고 싶었던 이유도 있다. 처음에는 폐공장이나 벽돌로 지어진 폐창고를 찾았지만 서울의 중심인 이태원에서 그런 공간을 찾기는 힘들어서 낡은 건물을 직접 공사해서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다.”

래빗홀의 사장인 제리도 비슷한 대답을 내놓았다. “래빗홀은 다른 곳에 비해 상가적인 측면에서는 비싼편이다. 임대료를 생각했다면 우사단로 쪽이나 좀 더 보광동 쪽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래빗홀 위치는 이태원역과 3분 거리라 접근성이 좋다고 생각해서 정한 것이지 임대료를 크게 따지진 않았다. 일단 시설의 안정성과 허가 부분이 완벽했다. 이 작은 곳에 스프링쿨러까지 있다. 그리고 작은 공간 안에서 클럽 운영에 대한 새로운 도전도 해보고 싶었고 근접형 사운드에 대한 성취감도 느끼고 싶었기에 이 장소를 선택했다. 현재까지 래빗홀 사운드가 엉망이란 소리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

달리 말해, 창고풍 혹은 소규모 클럽의 언더그라운드 바이브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 골목이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뻔하지 않은 새로운 환경을 딛고 일어나 성취감을 느끼려는 도전적인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래빗홀과 베톤 부르는 기존의 클럽과 다른 색깔을 내세웠다. 래빗홀은 처음엔 베이스 뮤직 전문 클럽으로 오픈하려고 했다. 제리는 이렇게 말한다. “오픈 초창기에 디제이 바리오닉스와 함께 하기로 마음먹고 베이스 음악을 고집하는 클럽을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까진 베이스 음악 디제이에 대한 수요가 너무 없어서 테크노와 하우스 쪽도 도전하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딱히 정한 것은 아직 없다. 래빗홀에 맞는 색깔을 찾기 위해 아직도 노력 중이다.”

베톤 부르 역시 기존 클럽들과 다르게 복합문화공간임을 내세우고 강연과 라이브 공연을 시도하고 있다. 큐엔에이는 이렇게 말한다. “라이브 공연과 강의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이유는 클럽 음악, 특히 일반인들이 봤을 때 비주류라고 생각하는 음악 장르를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그들이 바라보는 클럽 음악에 대한 시선에 좀 더 변화를 주고 싶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재즈나 인디 밴드들과 함께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나가고 싶은 목표도 있다.”

우사단로 부근이 옛 이태원 이미지에 더 가깝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큐엔에이는 말한다. “옛 이태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먼저 생각했다. 사람으로 보자면 일반인부터 LGBT, 인종으로보자면 한국인부터 중국, 일본, 인도, 중동은 물론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세계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고 이들 문화 속에서 서로에 대해 존중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적으로도 주류보다는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음악을 추구하는 우리에게는 다양한 문화권 사람들과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섞여 살아가는 우사단로가 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래빗홀의 제리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사실 요즘은 이태원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장소를 찾기 힘든게 사실이다. 그와중에 ‘이태원스럽다’고 할 만한 곳이 바로 이지역이기에 선택했다. ‘무섭다’, ‘어렵다’, ‘꺼려한다’ 이것도 있지만 현재는 잊힌 이태원 본연의 스타일에 래빗홀만의 음악을 입히고 싶었다.”

아직은 젠트리피케이션을 걱정할 정도로 거리가 활성화되진 않았다. 새벽에도 사람들이 끊이질 않지만 딱히 이 클럽들 때문이라고 보긴 힘들다. 이곳에 클럽이 잔뜩 오픈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해밀턴 호텔 근처 클럽들이 딱히 고전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미스틱, 뮤트, 베뉴 등은 여전히 이태원 클럽의 중심이다. 보광로와 우사단로가 새롭게 대세를 장악했다 말하기엔 이르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곳에 클럽을 오픈한 이들은 씬에 오래 머무르며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이다. 이들이 클럽의 생존을 위해 벌일 앞으로의 노력들은 이태원 클럽의 지형도를 조금은 바꾸어놓을 것이다. 현재는 파우스트가 원 톱의 명성을 갖고 있지만 제일 먼저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래빗홀은 착실히 자리잡아가는 중이고, 베톤 부르는 10월에 내한 공연과 기획 파티를 준비 중이다. 플래툰 소넨덱은 유학생과 외국인들로 늘 북적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댄스를 대표하는 디제이들이 이 골목에서 자주 음악을 튼다. 딥한 음악을 존중할 줄 아는 클럽들 덕택에 딥한 장르 디제이들이 설 공간이 많아진 것이다. 이들 사이에 좋은 시너지가 생긴다면 앞으로의 이태원 클럽 씬은 상당한 변화를 겪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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