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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ING DEEP] 감동의 공명, 취향저격 보컬 있는 EDM 파티

[GOING DEEP] 감동의 공명, 취향저격 보컬 있는 EDM 파티

“어제 같은 무대는 생전 처음이고 본 적도 없다.” 디제이 한민이 <취향저격 보컬있는 EDM>의 두 번째 파티에서 플레이한 뒤 SNS에 남긴 말이다. 디제이 준코코도 현장에 도착한 뒤 엄청난 관객 열기에 놀라 “이런 거 태어나서 처음 봤다”는 글과 함께 영상을 찍어 올렸다. 영상 속 관객들은 제드의 ‘Clarity’를 따라 부르며 광란의 점프를 선보이고 있다.

필자도 그런 광경은 처음 봤다. 클럽에서 그렇게 음악에만 올인해 땀에 푹 젖어 노는 관객들을 본 적이 없다. 아무리 유명한 디제이가 내한을 와도 히트곡 몇 개에서 열광적 떼창이 벌어지다가 평범한 반응으로 다운되곤 한다. 업 다운이 있다. 그런데 취저 파티 관객들은 오후 5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쉬지 않고 떼창하고 뛰어댔다. 과연 체력이 버텨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쉼 없이 놀았다. 머리 위로 올라간 두 손이 내려올 줄 몰랐다. 나중에 취저 페이지에 가보니 바지 무릎 부분에 소금이 배인 인증샷이 올라왔다. 상의는 당연히 다 젖었고 하의까지 땀으로 샤워했다는 뜻이다. 클럽 측은 에어컨을 희망온도 18도로 가열차게 틀어댔지만 현장에서 느껴진 체감 온도는 30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사실상 사우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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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파티에서 신기했던 건 관객들의 체력만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클럽 파티의 상식을 뒤엎는 의외의 순간들이 많았다.

일단 취저 파티 관객들은 브레잌다운을 좋아한다. 이날 음악을 준비한 디제이들이 관객들이 EDM 팬인 것을 고려해 대형 클럽에서 잘 먹히는 드랍을 여러 번 들려줬지만 반응이 썩 좋지 않았다. 오히려 보컬 멜로디가 나오는 브레잌다운 부분에서 열광적인 떼창이 터져나왔다. 디제이 한민은 “평소엔 클럽에서 40곡 가량을 틀곤 하는데 이날은 15곡을 틀었다”고 말했다. 브레잌다운을 제거하고 드랍 위주로만 달리는 믹싱은 이곳에선 절대 통하지 않는다.

디제이 교대 방식도 독특하다. 페스티벌처럼 쉬는 시간을 갖는다. 다음 디제이가 곡을 이어받지 않고 음악을 끈 다음 10분 정도 쉬는 시간을 갖고 다시 시작한다. 클럽에선 그렇게 교대했다간 손님들이 다 가버릴 것이다. 흥이 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저 파티 관객들은 아무도 집에 가지 않았다. 다음 디제이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타임이 끝날 때마다 앵콜 요청도 나온다. (이게 정말 독특하다!) 앵콜로는 주로 모두가 다 아는 명곡 중의 명곡이 나온다. 예를 들어, 사비 앤 기는 제드의 ‘Spectrum’을 틀었다. 앵콜 곡의 반응은 특히 격렬하다. ‘Extended Mix’를 공박부터 다 틀어도 미친 듯이 즐긴다. 사비 앤 기의 기준은 ‘뭐 이런 관객들이 다 있어?’ 싶었는지 세 번째 곡에서 머리에 물을 부었다.

테이블은 텅텅 비었다. 이들에겐 뛰면서 즐기는 게 중요하지 테이블에 앉아 있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추파를 던지는 남성 관객도 없었다. 남녀 사이에 눈치 게임이 벌어지기는 커녕, 남들 다 따라부르는 노래를 나만 모르면 어쩌나 하는 경쟁이 느껴졌다. 이곳에서 제일 멋있는 사람은 VIP 테이블 예약자가 아니라 인트로만 나와도 무슨 곡인지 다 아는 사람이었다. 보통의 클럽이 어떤지 아는 사람이라면 10분만 지나도 ‘여기 뭐야?’라며 눈이 휘둥그래질 것이다.

한국의 클럽 씬에 완전히 새로운 아이들이 나타났다.

이렇게 이례적인 반응이 나오는 이유가 뭘까. 디제이 한민은 “프라이빗과 신청곡”을 이유로 꼽는다. 신청자들 중에서도 일부만 뽑혀서 오기 때문에 절실함과 열의에 찬 사람들이 오게 되고 (1623명 중 300명), 인생 명곡을 신청 받아 플레이리스트에 반영하기 때문에 아는 노래의 힘도 작용한다는 것이다. 사일런트 디스코에서 디제이로 활동하는 이정우 씨는 “보컬의 힘”을 꼽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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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자인 취저보이는 이런 이유들에 더해 “감동의 공명”을 결정적 요소로 꼽는다. 특정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이면 개별 감동의 공명이 생긴다는 것이다. 공명으로 거대해진 파괴력이 취저 파티 특유의 격한 에너지라는 분석이다.

“음악을 들을 때 집에서 듣는 거랑 라이브로 듣는 건 완전히 다르거든요. 그리고 나만 이 노래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이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 100명, 200명, 300명이 있는 순간, 감동의 공명이 생긴다고 생각했어요. 연쇄작용을 거쳐서 펑 터지는 거죠.”

개별이 모여 하나가 되는 현상은 실제로 현장에서 자주 목격됐다. “혼자 온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모르는 사람끼리 어깨동무하고 서로 눈 마주치고 따라 부르더라고요.”

평소엔 EDM 취향을 공유할 수 없던 절실한 사람들이 모인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필자 님은 주위에 EDM 업계 분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우리 파티에 오시는 관객들을 한 분 한 분 만나보면 어떠냐면요, 주위에 EDM에 대해서 얘기할 사람이 없대요. 그리고 무시받아요. ‘클럽 음악 아니야?’ ‘박명수?’ ‘까까까?’ 이런 식으로 무시를 받아요. 주위에 페스티벌 같이 갈 사람도 없어요.” 뒷풀이에 참석한 어떤 여성 관객은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야! 여기 나 같은 사람 300명 있어!”

취향저격 보컬 있는 EDM 페이지는 국내 EDM 관련 페이지들 중 전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개설 10일 만에 1만명, 100일 만에 4만명, 개설 200일 만에 9만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지금껏 한국 EDM 페이지 중 3만명을 넘은 예가 없다.

이렇게 빠른 성장의 비결은 자막을 입힌 자체 영상에 있다. 취저 페이지는 페스티벌 영상이나 뮤직 비디오에 가사 해석을 자막으로 달아 공유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냥 라이브 영상 딸랑 하나 올리지 않고 사람들이 영상을 끝까지 볼 수 있도록 자막을 입혔어요. 이 음악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라도 ‘어? 이게 이런 내용이었구나’ 알 수 있도록요.”

취저보이는 특히 자막에 큰 공을 들인다고 한다. “자막에 신경을 정말 많이 써요. 일단 가장 큰 주제를 먼저 파악하고, 이 아티스트가 어떤 영감으로 이 곡을 만들었는지 조사하고, 그걸 기반으로 해석을 만들어요.” 번역도 까다롭게 하고 영상 선별에도 상당한 시간을 투자하기 때문에 하나의 게시물을 만들기까지 보통 2~3일이 걸린다.

새로운 곡을 디깅해 알려주기보다는 다같이 좋아할 수 있는 곡을 공유한 것도 인기의 비결이다. “기존의 EDM 페이지들은 딥한 음악이나 신곡들을 많이 올려요. 그런데 EDM을 잘 아시는 1% 분들이 아닌 99% 분들을 위한 음악을 올리는 곳은 없더라고요. 저는 EDM이 단순히 비트 있고 뿅뿅대는 음악이 아니라 얼마나 가사가 아름답고 삶에 힘이 되는지 알려주고 싶었어요. 저는 ‘Don’t You Worry Child’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어요. EDM도 이렇게 멋있고 세련된 음악이라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이렇게 대중성과 완성도에 공을 들이니 조회수가 자연스레 높게 나온다. 데이빗 게타의 ‘Titanium’ 영상은 도달 범위가 110만이나 됐다.

취저 파티의 방식이 당장 클럽 씬에 적용되긴 힘들 것이다. 페스티벌처럼 디제이들 사이를 끊어가거나 신청곡 중심으로 셋을 짜는 것이 기존의 클럽 문화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클럽이 절실한 소수가 아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영업한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취저 파티는 의미 있는 물음표를 던졌다. ‘클럽도 막차 타고 갈 수 있게 낮부터 놀면 안 될까?’, ‘신청곡 받아서 틀면 안 될까?’, ‘클럽에선 앵콜 외치면 안 될까?’ 암묵적으로 안 된다고 했던 것들을 대담하게 뒤엎어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페스티벌 세대가 페스티벌적인 클럽 문화를 찾아나선 것일 수도 있고, 그냥 일회성 정모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지금으로선 확답을 내리긴 힘들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일단 취저 파티에 가보면 자극을 받는다는 것이다. 댄스 씬 관계자라면 다음에 있을 세 번째 파티에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처음엔 격한 플로어 반응에 놀라게 되고, 그 다음엔 ‘왜?’라는 질문이 떠오르며, 그 답을 찾는 동안 파티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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