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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ING DEEP] 레드불 쓰리스타일 리뷰: 디제이들의 디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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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4일, 제이 피츠는 제4회 암페어 쇼케이스에 턴테이블을 가지고 나왔다. 프로듀서들의 자작곡 라이브가 대부분인 암페어에서 다른 아티스트의 음반을 디깅해와 디제잉을 했다. 물론 테이블 위엔 라이브를 상징하는 드럼 머신이 놓여 있었다. 즉흥적으로 비트를 만들고 신스도 연주했다. 하지만 그 위에 스크래치와 매쉬업을 얹어 디제잉을 더했다. 암페어에서 이런 퍼포먼스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2주 뒤인 6월 18일, 2016 레드불 쓰리스타일(Red Bull Thre3style) 챔피언쉽 한국 결승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쓰리스타일은 누가 뭐래도 디제이들의 경연이다. 스크래치와 패드 플레이로 라이브에 가까운 디제잉도 선보이지만 주된 방점은 디제잉에 있다. 그런데 제이 피츠는 이 자리에 808 드럼 머신을 가지고 나왔다. 직접 음을 만드는 라이브의 요소를 더했다. 드럼 패턴을 만들고 그 위에 지드래곤의 ‘Crayon’ 아카펠라를 얹었다.

이런 창의성이 인정받았기 때문일까. 우승 트로피는 제이 피츠에게 돌아갔다. 막강 후보 스케줄 원을 2위로 밀어내고 거둔 1위였다. 그가 최근 들어 SNS에 건반과 드럼 머신 영상을 자주 올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새 시대의 DMC로 통하는 쓰리스타일에 808을 가지고 나올 줄은 몰랐다. 옥타곤의 거대한 스크린에 초록색 몸체와 열여섯 개의 막대 버튼이 보이는 순간, ‘감점일까 추가점일까’ 우려와 기대가 스쳤다. 심사위원들은 신선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믹서 역시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본인의 주 장비인 트랙터 Z2로 교체해서 썼다. 그는 통념을 개의치 않았고, 덕분에 세계로 뻗어 나갈 발판을 마련했다.

 

디제이들의 디제이

18일의 쓰리스타일 현장은 배틀 디제이들의 경연답게 평소 보기 힘든 특별한 퍼포먼스들로 가득했다. 부스에 놓인 장비부터 달랐다. 옥타곤 메인 스테이지엔 보통 CDJ 네 대가 놓이지만, 이날은 턴테이블 세 대가 놓였다. 믹스 패턴 역시 보통은 재생 버튼을 누른 뒤 모니터링 후 페이더를 올리지만 이날은 페이더를 올린 상태로 스크래치로 기교를 부리며 들어갔다. 이런 분위기를 짐작하고 온 관객들의 성향 역시 달랐던 것일까. 플로어에선 디제이 코난의 웜업 도중 즉흥 댄스 배틀이 벌어지기도 했다. 손을 땅에 짚고 하는 고난이도의 브레이크댄스가 등장하기도 했다. 옥타곤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사전 에디트가 아닌 라이브 버전의 매쉬업도 오랜 만에 잔뜩 들었다. 매쉬업이란 전혀 다른 두 곡을 동시에 플레이해 색다른 재미를 주는 디제이 기술인데, 요즘은 미리 섞어와 한 곡만 트는 경우가 많아 본래의 다이나믹한 재미는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이날은 턴테이블 두 대가 동시에 돌아가는 리얼한 실시간 매쉬업이 연신 이어졌다. 디제이 콸은 림프 비즈킷의 ‘Rolling’과 아델의 ‘Rolling In The Deep’을 한 데에 섞기도 했다. ‘How Gee’ 위로 “Let’s Take It Back To The Old School” 아카펠라가 흐르기도 했다. ‘We Wanna Party’ 루틴도 인상적이었다. TJR 버전의 보컬 샘플과 원곡에 해당하는 투 라이브 크루의 버전을 번갈아 저글링으로 들려줬다. TJR이 원곡인 줄 알았던 사람들은 똑같은 멜로디와 리듬으로 “Hey~ We Want Some Pussy”라는 노골적인 가사가 나올 때 흠칫 놀랐을 것이다.

세 가지 이상의 장르를 15분 안에 섞는 쓰리스타일의 룰에 맞게 클럽에서 좀처럼 듣기 힘든 폭넓은 장르의 음악이 플레이되기도 했다. 디제이 스케줄 원은 레이지 어갠스트 더 머신의 ‘Guerilla Radio’, 백스트리트 보이스의 ‘Everybody’, 라이오넬 리치의 ‘Say You Say Me’를 트랩, 힙합, EDM 등과 한 셋에 아울렀다. 디제이 비케이도 마이클 잭슨의 ‘Beat It’부터 릴 존의 ‘Bend Ova’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를 틀었다. 믹스하기 힘들어서 제외되곤 하는 트랙들이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디제이 배틀의 빼놓을 수 없는 묘미다. 이날의 참가자들은 배틀의 전통을 제대로 이해했고, 그것이 요구하는 연주자 경지의 디제잉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한 듯 보였다.

DJ J.Fitz (Winner) performs at the Red Bull Thre3Style at Club Octagon in Seoul, South Korea on June 18th, 2016.

사진출처: 레드불 코리아 (http://www.redbull.com/kr/ko/music/stories/1331801263759/redbull-thre3style-2016-winner)

그러나 이대로 괜찮은가

그러나 분명 난이도 높은 퍼포먼스였음에도 불구하고 월드 클래스의 벽은 여전히 높다는 걸 증명한 날이기도 했다. 우승자인 제이 피츠까지 포함해 모든 참가자가 부족함 또한 노출했다.

제이 피츠는 어려운 저글링을 구사하고 드럼 머신을 쓰기도 했지만 셋의 성향이 파티와는 거리가 멀었다. 관객석이 사실상 침묵에 가까웠다. DMC보다 관객 호응을 중시하는 쓰리스타일의 성격과 맞지 않았다.

대부분의 참가자가 스크래치의 정확성에서 부족을 드러내기도 했다. 얼핏 들어도 박자가 어긋난 연주가 많아 심하게는 셋에 마이너스가 되는 순간도 있었다. 스프레이는 비교적 정확도가 높았으나 난이도가 높은 기술들은 아니었다. 비케이는 너무 심심한 리듬을 지속적으로 사용해 숙련도에 의심이 가기도 했다.

믹스의 창의성이 중요한 대회에 식상한 선곡과 지겹도록 반복된 믹스가 여럿 등장한 것도 아쉬웠다. ‘Crank That’의 도입부 “You!”로 시작하는 믹스는 UMF에서 디제이 소다도 선보였을 정도로 이젠 흔해졌다. 디제잉의 최첨단을 겨루는 자리엔 어울리지 않았다. 핏불의 ‘Don’t Stop The Party’ 같은 감주 스타일의 선곡이나, 갈란티스의 ‘Runaway’ 같은 지겹도록 들은 음악도 등장했다. 선곡의 신선함보다는 ‘어떻게 트느냐’가 중요한 대회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독특한 재조합을 선보이지도 않았다.

국내를 기준으로 한다면 이들의 테크닉은 톱 클래스에 속한다. 또한 턴테이블리스트들이 설 자리가 없는 한국 현실에서 이만한 인물들이 배출되는 것 자체가 놀랍다.  희박한 인정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한국의 배틀 디제이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글로벌 무대에 서기엔 한국의 인재 풀이 매우 좁다는 것을 절감한 해였다. 대중성까지 원하는 쓰리스타일의 기준을 충족하기엔 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타이틀 보유자와 베테랑들이 출전해 대회 수준을 높였지만, 이들이 물러나고 신인들끼리 맞붙으면 어떤 대회가 될지 솔직히 가늠이 되지 않았다. 과연 대회가 제대로 유지나 될 수 있을지 의문도 들었다.

가능성도 확인했지만 위기도 절감한 날이었다. 놀라운 순간도 있었지만 아쉬운 순간이 더 많았다. 한국의 턴테이블리즘은 이대로 괜찮은가. 만약 이들의 실력이 곧 한국의 실력은 아니라면, 더 출중한 숨은 고수들은 왜 출전하지 않는 걸까. 대회장 밖으로 나오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물론, 드럼 머신이 등장할 때보다 아는 노래가 나올 때 더 반응이 좋았던 그날의 플로어를 떠올리면, 차마 못 할 말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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